활주로에서 이륙 준비를 마친 비행기는 드디어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인천공항에서 몽골 울란바토르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

우리는 길고도 짧은 3시간여의 비행 끝에 푸른 초원과 게르가 보이는 순간 드디어 몽골에 도착함을 느끼게 되었다.

비행기는 울란바토르 칭기즈 칸 공항에 무사히 내려앉았다.

(착륙시 약간의 흔들림이 있어 처음 비행기를 타본 팀원들은 긴장하기도 했다.)

몽골의 땅에 무사히 도착했지만 아직 넘어야 산이 있었다. 바로 출입국 심사였다.

혹시라도 걸리는 물건이 있을까~

이야기로는 과거보다 출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졌다고 한다(최근 들어 늘어나는 마약 범죄 때문).

다행히 출입국 심사는 무사히 마쳤다.(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혜로운 분들 덕분에^^)

다만 사람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뭔지 몰라도 심사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예상보다 1시간이상 지나서야 우리는 몽골 땅에 발을 내딜 수 있었다.

<칭기즈 칸 공항>

여기서 몽골에 대해서 잠깐 설명할까 한다.

 

몽골의 지정학적 위치는 우리와 비슷하다. 좋게 보면 중앙아시아의 심장이로되 칭기즈칸 시대를 제외하고는 늘 러시아와 중국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마치 희망의 무지개(솔롱고스)가 뜨는 나라로 알려진 대한민국처럼. 몽골이 내몽골을 내주고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건 1921년. 러시아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의 사회주의를 고수하다가 1990년 구소련의 붕괴에 힘입어 민주주의로 전환되었다. 문제는 부실한 국가 경영 마인드. 따라서 수도인 울란바타르마저 이렇다 할 발전상이 없고 앞으로도 별반 나아질 기미가 없다는 게 서글프다. 도심에는 빈민들이 몰려들어 달동네를 이뤘지만 포장도로가 드물고 접근이 만만치 않아 생활하기에 불편하다. 총면적은 남한의 16배로써 세계에서 19번째로 큰 국가. 이 광활한 대지에 겨우 300여 만 명이 살다보니 경제개발에 탄력을 받지 못할뿐더러 내수랄 것도 없어 이와 같이 보잘것없는 형편으로 굳어져버렸다. 온갖 풀이 자라기에는 최적인 날씨. 때문에 평원마다 초원이 널따랗게 분포돼 있다. 강력한 대륙성에 사시사철 건조한 냉대기후여서 긴 겨울(10월 중순에서 3월까지)과 짧은 여름(7~8월)의 일교차는 큰 편이지만 체감온도의 경우 습도가 없어서인지 한겨울은 더 춥게 느껴지는 반면에 한여름은 오히려 시원하다.

주차장에서는 미리 가신 이기택 장로님과 신광야 선교사님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선교사님이 미리 예약한 한 대의 버스에 일행이 태우고 서둘러 공항을 빠져나왔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몽골의 시내를 지나 우리가 사역해야 할 BTJ 미션캠프를 향하여 달렸다.

미션캠프까지는 30여분의 거리이지만 차량 정체로 1시간정도 걸린 것 같다

버스안에서 울란바타르의 첫 느낌을 생각나는대로 나열해 본다면

국산차와 일본차, 차량 정체, 아파트 신축 현장, 낡은 상가건물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비슷비슷한 간판들….

우리는 밤 9시가 넘어서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짐을 풀고 우리를 위해 준비한 저녁식사를 하였다.

특별히 우리는 위해 갈비찜을 준비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말고기로 만든 갈비찜이었다. 맛은 정말 최고였다.

<몽골에서의 첫 저녁식사>

식사후에 우리는 각 숙소에 짐을 풀고 약간의 세면 후에 예배당에 모여서 도착예배 및 OT를 갖았다.

다들 피곤하고 지친 가운데도 12시가 넘는 시간까지 모두가 집중하여 몽골의 역사, 문화, 종교, 그리고 몽골의 특성에 대해 들었으며 몽골을 위한 선교사역을 위해 그리고 내일부터 시작할 을지트 사역을 위해 다함께 기도함으로서 첫날 몽골에서의 모든 프로그램을 마쳤다. 그리고 각 숙소(게르와 예배당)로 이동하여 취침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