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또 보고 싶은 사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집안 사정으로 시골 큰댁에 맡겨져 학교를 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그 어린 마음이 얼마나 외롭고 고달팠을까 싶습니다. 큰아버지 방에 유일하게 전화기가 있었는데,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러 오라는 목소리만 들려도 수화기를 들기 전부터 눈물이 터져 그칠 줄 몰랐습니다. 어린 날의 일이지만 참 시리고 아픈 기억이라, 가끔은 떠올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힘들었던 시절이 전하는 기억이 늘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 풍경 속에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한 분, 당시 저의 담임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보석처럼 남아 있습니다. 중년의 여선생님이셨던 당신께서는 저를 유난히 예뻐해 주셨고 따뜻한 관심을 쏟아주셨습니다. 아마 서울에서 온 어린 아이가 부모를 떠나 큰집에서 지내는 모습이 못내 안쓰러우셨던 모양입니다. 마침 선생님 댁이 제가 지내던 집과 가까워, 등하굣길을 나란히 걸으며 참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투영되었던 것일까요. 저는 선생님을 무척이나 따랐고 깊은 정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닭을 키우시던 큰어머니께서 달걀 열댓 알을 그릇에 담아 보자기 매듭을 지어주시며, 선생님 댁에 갖다 드리고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단순히 심부름이라서가 아니라, 제가 너무도 좋아하는 선생님을 뵐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한달음에 선생님 댁으로 달려갔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걀 그릇을 내밀었는데, 아뿔싸. 그릇 속을 확인한 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릇을 흔들며 뛰는 바람에 달걀이 모조리 깨져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괜찮다며 제 어깨를 다독여주셨지만, 나중에 이 사실을 아신 큰어머니께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날 선생님 댁으로 향하던 제 마음은 기쁨과 벅찬 감동으로 가득했습니다. 낮에 학교에서 뵈었음에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이 그토록 좋았습니다. 그릇 속에서 달걀들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내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내달렸던 그 마음. 제게 선생님은 그야말로 ‘보고 또 보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한 주, 문득 이 기억이 떠오른 것은 목회자로서의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스승과도 같은 존재인 나는 과연 성도들에게 어떤 사람일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목회자를 만나는 일이 성도들에게 기쁨이자 설렘이어야 할 텐데, 저의 자문(自問)은 끝내 겸허해집니다. 누군가에게 부담스러운 존재, 혹은 마주하기 꺼려지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든 반갑게 달려가고 싶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보고 또 보고 싶은 사람. 그런 목회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성도들의 삶 속에 따스한 위로로 남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더 낮은 곳에서 기도하며 사랑하기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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