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목사입니다.

밴쿠버에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한 집사님께 공항 라이드를 부탁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민 목회는 곧 섬김의 목회라고 배웠기에, 저는 기쁜 마음으로 집사님을 공항까지 모셔다드렸습니다. ‘이 또한 목양의 연장선’이라는 즐거운 마음으로 차를 세우는 순간, 집사님께서 제 손에 봉투 하나를 건네셨습니다. “목사님, 공항 라이드 비용을 알아보니 보통 70불 정도 한다고 하네요. 여기 넣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 한구석이 왜 그리 쓸쓸하고 우울했는지 모릅니다. 성도를 사랑으로 돌보고 섬기는 것은 목회자의 당연한 사명이지만, 제가 제공한 ‘목양의 수고’가 단돈 70불짜리 ‘단순 서비스’로 치환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던 까닭입니다.

저는 소형 교회가 가진 장점이 단점보다 훨씬 많다고 믿는 목사입니다. 목회자와 성도가 밀접한 영적 관계 속에서 호흡할 수 있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섬김을 실천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밀착된 환경이 개척 교회 목회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합니다.

현대 교회의 성도들은 교회를 통해 매우 다양하고 체계적인 서비스를 제공받길 원합니다. 수준 높은 성경 공부, 소그룹을 통한 풍성한 교제, 완벽한 교회학교 시스템까지. 사실 소형교회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서비스’들입니다. 물론 교회가 성도의 신앙 성숙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깊이 숙고해야 할 지점은, 우리 모두가 교회에서 무언가를 ‘받는 일’에만 너무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목회자에게도 위험한 유혹이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목회가 아니라, 성도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친절한 퀵 서비스맨’이 되어야 한다는 본질적인 위기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가 하나님이 아닌,사람을 경외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존재하며, 교회는 그 예배자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흥미롭게도 예배를 뜻하는 영어 단어 중 하나는 ‘서비스(Service)’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각종 서비스를 ‘받고 누리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 최상의 서비스를 ‘행하고 드리는 곳’이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목사와 성도 모두가 하나님께 ‘서비스’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목사이기 이전에,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한 사람의 예배자이고 싶습니다. 또한 목사로서 성도들을 양육하고 훈계하며, 그들이 사람에게 서비스를 요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온전한 서비스를 드리는 자가 되도록 돕고 싶습니다.

교회는 서비스를 받는 곳이 아니라 드리는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기꺼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목사로 남고 싶습니다. 이왕 서비스맨이 될 바에야, 하나님 앞에 가장 최고이자 최선의 것으로 서비스하겠습니다. 훗날 주님 다시 오실 때, 제게 두둑하게 건네주실 하늘의 상급(Tip)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대상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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